[제 2.174회]

🚀 지금은 속도혁명 🚀 (제 2.174회)

추상같은 명령, 일사분란한 신호체계가 교차하는 전쟁터는 속도의 격전지이다. 속도 우위를 지키면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것은 물론, 소수가 다수를 이길 수도 있다.

13세기 칭기스칸을 리더로 한 북방 몽골인들이 극도로 열악한 조건을 딛고 정착문명권, 중국문명권, 이슬람문명권, 유럽문명권을 정복하고 통치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결은 한 가지 신념에 있었다.

"속도는 종교다." 속도를 올리는 것과 늦추는 것을 선택사항이 아니라 선악으로 본 것이다. 당연히 속도를 올리는데 기여하는 행동과 문화 체질 등은 선이며 그 반대는 악이다. 선과 악의 끝은 쉽게 말해 천당과 지옥으로 갈린다.

유목민들은 강력하고 강대한 정착문명권 사람들과 수천 년 동안 싸워왔다. 그 대부분의 기간은 자원이나 병사 등에서 몽골 유목민들이 절대열세였다. 이 열세가 그들에게 속도는 종교라는 신념을 심어줬고 그 신념에 따라 그들은 내부의 역동성을 한층 더 강화했다.

신기에 가까운 마상술의 비결도 속도 중심 사고에서 비롯됐다. 말을 잘 타지 못하면 속도 경쟁에선 완패한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로 생각해보라. 그들은 심지어 "말(馬)을 타고 말(言)을 배운다“고 한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타고, 옮겨 타고...

몽골군대는 병사 1인당 말을 4~5마리씩 끌고 다니며 말이 지칠 때 마다 옮겨 타는 방식으로 높은 속도를 항상 유지했다. 고기를 말린 것(육포)을 '보르츠’라고 하는데, 이것도 유목민들의 개발품이다.

원정전쟁을 하려면 군대 식량이 필요한데 이 육포야말로 가볍지만 훌륭한 비상식량이 될 수 있다. 몽골인들은 또 갑옷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옷 안에 일종의 스프링만 있는 허름한 군복을 개발했다. 그래서 가볍지만 화살에 쉬이 뚫리지 않는다. 이 역시 속도를 내기 위한 초경량화이다.

유목민의 리더 칭기스칸은 이점을 꿰뚫고 있었던 사람이다. "나를 칸이라 부르지 말라! 테무진이라 이름을 불러라!"

병사들이 그를 칸이라고 부르는 순간, 대등한 입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자유로운 토론과 투명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리 없다. 칸의 눈빛과 말에서 해답을 찾는 기가 막힌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팽배하게 된다.

그는 같은 이유에서 특정인과의 독대도 하지 않았다. 한사람과 독대를 하면 전원을 독대해야 한다. 그러면 속도를 가로막는 온갖 것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를 듣고, 같이 의사를 정하도록 했다.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의 전쟁터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21세기의 전쟁터인 비지니스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어떤 회사의 A과와 B과 직원들이 토론을 하는데 이견 차이가 속도 문제에 있는가? 속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 때문인가?를 놓고 논한다.

"지난번에 지시가 이랬어! 그런데 너희 과가 집행하지 않았잖아!" "아니야. 그렇게 했더라면 C과 직원들은 자신들을 물로 보냐고 반발했을 게 뻔해!" 속도를 종교로 하는 조직에선 속도와는 관계없는 그런 토론이 벌어질 이유도 근거도 없다.

이번엔 조직모델을 들여다보자. 머리가 정상적인 크기에 어깨가 딱 벌어지고 다리 근육이 잘 발달된 사람이 달리기를 잘 한다. 머리가 가분수이면 즉, 비서실이나 회장실이 쓸데없이 크면 잘 달릴 수 없다.

복부비만인 조직 즉, 중간관리층이 많은 조직은 성인병에 걸린 조직이다. 군대의 기합 중에 봉체조라는게 있다. 기다란 통나무를 여러 사람이 어깨에 짊어지고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가며 올렸다 내렸다 하는 벌이다.

그런데 맨 앞에서 부터 키가 큰 병사순서로 배열되면 문제가 없는데 양쪽에 키 큰 병사를 세워 놓으면 두 병사만 죽을 고생을 하고 중간에 있는 키 작은 병사는 식은 죽 먹기다.

조직에서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부하 또는 소수의 집단에게 모든 일을 미뤄놓고 나머지는 손을 놓아버리면 그런 조직은 달리기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되기도 힘들다.

더 큰 문제는 결재서류, 보고 형식에 있다. 문자메시지로 보내면 될 보고도 무슨 보고대회 처럼 거창하게 한다. 사장님이 지시한 사항, 경과보고 등등. 듣는 사람들에겐 하품만 나오는 장면들이다.

명함 크기의 종이에 간단히 메모해서 보고 할 것도 책자 크기의 서류로 만들거나, 서서 해도 될 것을 굳이 앉아서 한다든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상명하달만 반목되는 조직문화. 그런 곳에 속도중심 사고가 뿌리 내리기란 불가능하다.

속도가 늦어지는 이유는 더 있다. 직선코스가 속도에는 절대 유리하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 들은 곡선을 좋아할까? 왜 갈지자의 길을 선호 할까? 고향 선배가 저 부처에 근무한다면 회사 기밀을 몰래 귀띔해 줘야 한다. 고교나 대학 동창이 동료라면 그 사람도 빼 놓을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옛날에 모셨던 상사, 심지어 출퇴근 길이 같은 방향인 동료, 종교가 같은 동료, 부인들끼리 친목계를 하는 동료까지 챙겨야 한다. 이런 연(緣)들의 코스를 한바퀴씩 돌다보면 속도는 한없이 늦어질 수 밖에 없다.

글로벌시대가 활짝 열린 21세기의 승부는 속도가 가를 가능성이 더 커졌다. 진정한 미래의 승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메아리 없는 구호를 외칠 까닭이 없다. 변화와 개혁도 좋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네 글자가 아닐까? "속ㆍ도ㆍ혁ㆍ명!"

전쟁과 비즈니스의 승패는 '속도' 입니다.
오늘도 어느 일을 하시든 속도감 있는 월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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