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 치유보다 더 큰 기적

<첫 시간과 마지막 시간>, 렘넌트리(Remnantree)

한 영혼의 가장 중요한 첫 시간표에 내가 있다
한 영혼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시간표 속에 나를 보내셨다

태어나는 날과 죽는 날은 그 분이 정하신 날
나머지 가장 중요한 첫 만남과 마지막 만남은 나그네 꾼에게 주신 절대사명

점 같은 현재에 새로운 자들이 들어온다
영원의 미래로 그의 사람과 아닌 사람이 나간다

단 한번의 기회에 한 영혼의 생사가 걸려있다
올바르고 정확한 절대헌신으로 역사할 능력은 그의 몫


<앉은뱅이 치유보다 더 큰 기적>, 영도권역 박인숙 권사

안녕하세요? 영도권역 박인숙 권사입니다.
저는 제사가 많은 종갓집 장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뜻대로 되는 것이 없이 노이로제, 강박증, 불면증, 가위눌림 등 영적으로 시달렸고 이유도 모른 체 아무런 희망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결혼을 했는데 둘째 딸이 자폐아였습니다. ‘혹시나 교회에 가면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교회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에게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으며 저는 아이랑 하루하루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고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술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교회를 다녀도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제는 죽는 것이 사는 길이란 생각이 들어 아이와 함께 죽으려고 날을 잡았습니다. 집안을 정리 하는데 큰딸이 맘에 걸렸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이 험한 세상을 혼자서 어떻게 살까? 둘째아이를 고치려고 특수 교육이며 치료실, 병원이란 병원을 다 쫓아 다니다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습니다. 그때는 자폐에 대해 인식이 부족하고 장애에 대한 혜택도 전혀 없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빨리 돈을 벌어 큰딸에게 남겨주고 나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죽음을 잠깐 뒤로 미루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제겐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아이가 다니던 장애 어린이집 건물 2층에는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번은 아이를 등원시키는 중에 그 교회의 십자가가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을까... 십자가를 보니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 시간 정도는 기도를 해야 하나님께 내놓으라 떼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기도를 시작 했는데 단 5분도 앉아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시간을 좀 늘릴 수 있을까?’ 연구한 끝에 성경책 뒤 부분에 교독문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제일 짧은 교독문을 읽고 찬송가는 제일 긴 것 찾아 읽고 단 한마디 “하나님 우리 아이 말 좀 잘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중 아이가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도응답인줄도 몰랐습니다. 교육을 시키고 세월이 가니 좋아지나 보다 생각 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저에게는 늘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을까.. 왜 예수만 믿으라고 하며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까? 교회 오라는 날은 도대체 왜 그렇게 많으며 헌금은 왜 강조를 할까? 주일날 예배는 왜 몇 번씩 드리는 걸까? 놀러도 못 가게? 그렇게 의심하고 불평하면서도 약 3개월 정도 정시기도를 하는 중에 같은 교회 집사님의 집요한 권유로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운동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다!’ 라는 사실이 깨달아졌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아~ 예수를 믿는 것은 생명을 얻는 것이구나!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다 받은 거구나! 깨달아졌고 그때 그 기쁨 그 행복은 20년여 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감사하며 고맙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그때도 나에게 대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고 계셨습니다.

종갓집 장손이라는 영적배경 속에서 마치 무엇인가에 묶인 것처럼 하는 일 마다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자녀만은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언제 태어나느냐에 따라 신분이 바뀔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무려 다섯군데 점집과 철학관 스님을 찾아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몇 날 몇 시를 뽑아 태어나게 해서 그런지 엄청 똑똑해 보였습니다. 첫돌쯤 되었을 때 저는 우리아이가 보통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만 세 살이 되었을 때 자폐진단을 받았습니다. 자녀 문제와 저의 영적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교회를 갔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늘 갈등하다가 복음을 만났습니다.

‘왜 하나님이 나에게 장애를 가진 자녀를 주셨을까?’ 질문하는 가운데 요9:1~7 말씀을 통해 나와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 구원의 계획과 온 땅의 장애현장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발견하게 되어졌습니다. 그 후 요9:3 말씀을 자폐복음화를 위한 나에게 주신 이면계약으로 굳게 잡게 하셨습니다.

나처럼 자녀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모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정체성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97년도 주교 교사강습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현장팀메시지 시간에 “모든 아이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라”는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 모든 아이들 속에는 우리 장애 아이들도 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복음을 듣게 하죠? 전하려고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데요?’ 이런 기도 중에 몇 분의 귀한 사명자 집사님들을 붙여 주셨고 함께 포럼하며 자폐아 여름성경학교를 시작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반대도 많았지만 자폐여름성경학교가 시작 하던 날, 22가정이 참석했고 그중 절반 이상이 불신자 가정이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3박4일 진행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메신저, 사역자, 식사, 숙소 등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게 응답하셨고 역사 하셨습니다. 70% 이상의 가정이 연결되어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중직자·교역자로 세워진 분들도 있습니다.

2000년 제2회 자폐아 여름성경학교 때는 윤성주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자폐아 여름 성경학교를 하였습니다. 그때 몇 분의 부모님들이 목사님께 건의를 드렸고 마음에 감동을 받으신 목사님께서 그해 1월부터 치유총국 주관으로 1회 자폐치유 캠프를 시작하게 되었고 10여년째 자폐치유캠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폐여름성경학교 이후,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였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예배드릴 장소가 없었습니다. 이걸 놓고 부모들이 매일 모여 일년 반을 기도했고, 2003년 공식적으로 사랑부가 첫 주일 학교로 세워졌습니다. 지금은 전국에 13개 이상의 사랑부가 세워졌고 장애인 주간보호센터도 3개가 각 지역에 세워졌습니다.

저는 자녀를 통해 받은 응답이 너무 많습니다. 먼저 사랑부 한 현장을 19년 동안 바라보고 올 수 있었고, 장애를 가졌던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주간보호센타에서 사랑부 렘넌트(후대)를 가르치는 미술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딸은 웹툰작가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고, 부모들이 제자로 세워지고 보호센터에서 전공인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응답이라면 평생 특수목회를 하시겠다고 언약을 잡으신 목회자분이 일어나고 계신 것 입니다. 이 축복 속에서 저는 세계복음화, 자폐복음화, 7000만 장애현장 살릴 전도의 문이 열리고 제자들이 일어나도록 언약 잡고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성도님들께 부탁 들이고 싶은 말씀은 사랑부 렘넌트들을 보실 때 문제아로 보지마시고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함께 이루어 가는 동역자로 보아 주세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랑부 렘넌트들아~! 너희는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것뿐이란다. 너희여만 되는 달란트와 유일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사람을 살리는 증인으로 서길 축복하고 축복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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