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다곤 파야와 신입 가이드

양곤에 신입 여행가이드가 한명 도착하였습니다. 신입은 2년만에 처음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들 ‘이등병’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런데 44세입니다. 막내치고는 나이가 좀 들었습니다. 여긴 인도차이나에서 새로 개척되는 관광지라 태국이나 캄보디아 등지에서 베테랑 가이드들이 들어와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인도차이나에서 20년 넘게 일한 전문가이드들도 있습니다.

이 김이등병은 제가 아는 후배입니다. 해외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싶어해 현지 랜드사에 연결을 해주었습니다. 해외서 도전하겠다는 그 열정이 기특해서 취업은 시켰는데, 알고보니 해외여행은 처음입니다. 그것도 동남아 최고 가난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환경도 열악합니다. 제가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신입 가이드 훈련이 시작됩니다. 아주 가혹합니다. 잘 태워주지도 않는 베테랑의 관광차량에 헬퍼(Helper)로 동승한답니다. 베테랑 선배가 관광객을 가이드하는 모든 모습들과 멘트들을 메모하고 녹음도 해야 합니다. 졸았다가는 고속도로에서 선배가 신입을 하차시키는 경우도 있답니다. 게다가 외울게 엄청나게 많답니다.

미얀마에는 불교사원과 파야가 수만개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주요 유적지 수천개는 공부를 해야 하고 수백개 주요 파야는 자다가도 줄줄 입에서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이름, 유래, 설화, 가는 코스 등. 김이등병 앞에 갖다놓은 책만도 20권이 넘습니다. 선배들에게 졸라서 간신히 얻은 가이드 노트도 복사본이 책상 앞에 잔뜩 쌓여있고, 양곤부터 각 지방의 상세지도가 벽에 붙어 있습니다. 게다가 미얀마어를 한마디도 못하니 어딜 다니지도 못하고, 생활회화를 매일 중얼대고 있습니다.

한달을 선배 가이드를 따라 다니다, 몇 달간 현지답사를 다녀야 간단한 코스의 일이 주어집니다. 이젠 독방에 박혀서 공부를 합니다. 여기선 ‘보리수 아래’라고 합니다. ‘보리수 아래’서 도를 닦는 겁니다. 공부가 끝난 어느 날, ‘김보리수’가 저를 보자고 합니다. 이등병에서 승격했습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이제 예행연습을 좀 할까 하는데, 형님이 관광객이 되어 하루만 같이 돌아다닐 수 없을까요” “어딜 가는데?” “양곤의 명소 쉐다곤 파야부터요”

저도 NGO에서 파견되어 난민과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이등병’인지라 그 이등병이 애처롭습니다. 음식은 입에 맞냐? 모기에 물린데는 없냐? 물어봅니다. 견딜만하다고 합니다. 처음 외국에 와서, 다른 나라 사정은 잘 모르니 다행입니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쉐다곤 파야(Shwedagon Paya)로 향합니다. 관광객은 저 한사람입니다. 북문으로 올라가며 가이드의 멘트가 시작됩니다.

“여러분! 지금 왼쪽 차창 밖으로 보이는게 바로 양곤의 상징 쉐다곤 파야입니다. 5분 후에 우리는 북문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미얀마 말로 ‘쉐’는 황금, ‘다곤’은 언덕을 뜻합니다. 근처에 깐도지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의 흙을 퍼올려 언덕을 높혀 그 위에 대탑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양곤 어디에서든 황금빛으로 빛나는 쉐다곤을 볼 수 있답니다. 쉐다곤은 유일하게 부처 생전에 지은 파고다이기 때문에 미얀마 국민들에겐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파고다입니다. 작은 불탑들 중심에 세워진 쉐다곤 대탑의 높이는 100미터, 둘레는 약 420미터로 전체가 모두 금판으로…..”

땡! 내가 멘트를 끊습니다. “높이 99미터. 둘레는 426미터. 가이드가 ‘약’이 뭐냐. 정확해야지.” 제 손엔 김보리수의 가이드 노트가 들려 있습니다. “둘레는 제가 갑자기 생각이 안나서…근데 높이는 맞는데, 형님.” 사실 높이는 100미터, 99.4미터, 99미터 등 논란이 있습니다. 제가 정리를 해줍니다. “보니까 여기 최고참 구 베테랑이 99미터라고 했구만. 9란 숫자로 건축공법을 풀어놓았네. 불교에서 9란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 같아. 그러니 그걸로 해.”

저를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계속 땡땡땡을 칩니다. 연관된 질문을 하면 우물쭈물해 그것도 땡땡땡입니다. 까다로운 관광객을 만났습니다. 오후내내 그러고 다녔습니다. 둘다 기진맥진. “형님, 관광이 끝났으니 가까운 차이나타운 가서 꼬치구이에 맥주 한잔 살게요. 거기서 총평 부탁합니다.”

총평 시간입니다. “고생했는데… 쉐다곤에 대한 기승전결이 없어. 선배들 정보를 늘어놓았다고나 할까?” “기승전결은 또 뭡니까?” “기. 쉐다곤은 양곤의 상징이라고 했잖아. 그게 기야. 네가 거기 지어진 역사적 과정, 기증된 금이 6만여 킬로그램, 5448개의 다이아몬드 같은 설명은 승이야. 앞으로 승에 6하 원칙을 다 넣어.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근데 ‘전’과 ‘결’이 빠져 있어. 재밌는 에피소드나 설화 등은 전이야. 넌 건축공학 전공했으니 건축공법에 대한 독특한 풀이가 있다든지. 게다가 결이 빠졌어. 기에 대한 결론. 미얀마 국민들은 금에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탑에 붙입니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기부문화 2위국인 이유를 쉐다곤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상징하는 쉐다곤은 여기 국민들의 ‘심장’입니다. 뭐 이런 식이라도…”

“많은 자료들도 기승전결로 정리하면 쉬워질 거 같네요.” “그럼. 연극도 소설도 인생도 가이드의 멘트도 다 기승전결로 끝나. 더구나 가이드는 1인 모노 드라마의 주연배우잖아. 기승전결 4부작 모노극.” “그럼 재밌고 같이 웃을 수 있는 클라이막스가 있어야 하는데, 그건 형님이 좀 넣어주세요.” “알았어. 그 ‘대본’은 내가 한번 만들어볼게.” 이렇게 차이나타운의 밤은 깊어갑니다. 그런데 김보리수가 한숨을 푹 쉬며 느닷없이 한마디를 합니다.

“이런 곳은 이렇게 하면 되겠는데… 만달레이 같은 곳은 뱅기로 가면 괜찮지만, 고속도로로 가면 9시간 걸려요. 그 긴 9시간 동안 무슨 얘기를 하지요?”
 

 

<티처 정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고아를 위한 엔지오 Mecc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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