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과 고뇌 치유하고, 희망 심어주는 ‘삶의 안내자’
시련과 좌절 딛고 깨달음 얻어
지난 6월 29일 박경록 원장을 만나기 위해 찾은 ‘박경록철학관’은 아침 일찍부터 내방객들로 북적였다. 그 면면은 무척이나 다양했는데, 인근 영등포구 주민은 물론이고, 멀리 전라도와 경상도, 심지어 제주도에서 찾아온 내방객도 있었다. 사주와 운세 잘 보기로는 대한민국 1등이란 입소문이 전혀 근거없는 소린 아닌 듯 보였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자리를 함께 하게 된 박 원장은 예상과 달리 푸근하고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차림새 또한 검박했다. 사주와 운세에 도통한 인물이기 보다는 그저 평범한 우리네 이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박 원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오는 듯 했고, 눈빛도 정광어린 혜안으로 바뀌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연”이란 탄성이 절로 튀어나왔다.
사실 박 원장은 일반적인 역학자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용어에 빗대면 역학과 무속의 컨버전스라고나 할까.
박 원장은 “18살에 신내림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무속과 인연을 맺게 됐다”며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경기도 장호원에서 눌림굿 등을 통해 신과의 인연에 익숙해져 갔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무속과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님 모두 미신이 성행하던 이북 출신이었고, 더구나 어머니가 요정을 운영하며 재수굿을 많이 한 탓에 자연스레 무속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18살에 신내림을 받은 박 원장은 21살 때 본격적으로 신을 모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였기에 무속인으로서의 삶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에 어떻게든 신과의 인연을 피해보려고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에서 2년 정도를 보냈다. 이어 귀국 후 잠깐 생활하다 또 다시 미국 LA로 건너갔다.
이후 박 원장은 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여행사를 차렸다. 하지만 IMF의 여파로 빚만 떠안은 채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었던지, 얼마 후 장충동에 집을 구입하자 조금씩 경제적으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박 원장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세상만사에게는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었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운이 따르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 때부터 억지로 신을 내치려하지 않고 자연스레 물 흐르듯 마음을 내려놓고, 산속에 들어가 100일 기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운이 들어오면서 어려움이 하나 둘 해결되기 시작했다. 여행사 폐업으로 인해 쌓였던 빚은 어느 새 사라졌고, 1년여 만에 강원도 태백에 상당을 지을 수 있었다. 이후 2004년에는 이대부근 건물을 매입했고, 2006년에는 종로에 건물을 구입했다. 또 2007년엔 지금의 영등포 건물을 구입해 ‘박경록철학관’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게 됐다.
신점과 사주 모두에 능통
일반적으로 신을 모시는 무속인은 사주와 역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박 원장만큼은 이러한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명리학과 성명학, 관상학 등 동양철학을 섭렵하며 사주와 역학에 대한 이론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점과 사주 모두에 능통하다. 이처럼 박 원장의 뛰어난 능력은 NHK 등 일본 매체에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박 원장은 “흔히 신점과 사주를 별개라고 생각하는데, 그 목적을 생각하면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며 “신점과 사주 모두 사람들의 시름과 고뇌를 치유하고,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런 마인드에 기인해서일까. 박 원장을 찾아오는 내방객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또한 연애, 애정 등 소소한 개인사는 물론, 사업이나 직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민과 문제를 가지고 찾아온다.
그리고 이러한 내방객들의 고민과 문제를 박 원장은 과거, 현재, 미래를 내다보고 영험함과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한 사주·역학을 통해 말끔히 해소한다. 이를 입증하듯 박 원장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일례로 서울 한남동에서 수선집을 하는 한 엄마는 아이가 3살쯤부터 상태가 좋지 않아 큰 병원을 찾았지만 낫지 않아, 마지막으로 박 원장을 내방했다. 이에 박 원장은 그 원인이 상분(초상집을 잘못 갔다 오면 들어오는 것)으로 인한 것임을 꿰뚫어보고, 풀이굿을 해주었다. 그러자 3일 만에 아이가 완쾌돼 정상으로 돌아왔다.
또 다른 일례로 반신불구가 된 18세 학생이 엄마와 내방했다. 박 원장은 엄마의 도화살로 인해 벌어진 것이라고 판단해 천도재를 올렸고, 놀랍게도 반신불수였던 학생이 곧바로 걷기 시작했다. 지금 그 학생은 공무원으로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박 원장은 “지친 마음에 철학원을 찾아오는 분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안내자가 될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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